가을 4-올레길 16코스

올레길 16코스를 걸었다.
15Km 남짓한 길을 3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올레길 16코스는 의외로 해안길보다 산길이 더 길었다. 마치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것 같았다. 원래는 17코스를 걸을 생각이었는데 진입로에서 실수로 방향을 반대쪽으로 잡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16코스를 걷게 되었다. 어차피 그저 지칠 때까지 걷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16코스인지 17코스인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걷는 내내 가을이를 생각했다.
가을이가 아팠던 마지막 순간들만 떠올라 걸으면서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들을 애써 떨쳐버리거나 일부러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비대성심근증(HCM), 폐수종, 이뇨제, 혈전용해제, 후지마비.. 며칠 동안 귓가를 맴돌았던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몇 달 사이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어든 가을이의 상태에 의심을 갖고 미리 병원에 데리고 가 검진을 했었더라면, 추석 연휴 이틀 동안 가을이를 홀로 두고 창원에 다녀오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았었다면, 처음 증상을 보였을 때 제주시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가을이를 데리고 갔었다면…. 의미도 없는 가정들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흐린 하늘의 하얀 구름 속에도,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의 하얀 포말 속에도 어디에나 아픈 하얀 가을이가 있었다.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