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정 없는 휴일을 맞아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길을 나섰다.
가파도에 가볼까 하는 흐릿한 계획이 있기는 했지만 꼭 가파도일 필요는 없었다.
마침 모슬포 남항으로 가는 버스가 와서 몸을 실었다.
비가 가끔씩 흩날리고 바람이 조금 센 느낌이어서 가파도행 여객선이 운항할지 잠시 의심이 들었으나, 가파도에 못가면 올레길을 걸으리라 생각했다.
역시나 바람 때문에 가파도행 여객선이 모두 결항이란다.
사전 정보 없이 왔던 관광객 몇몇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나는 모슬포 남항 옆 바닷가 벤치에 앉아 바다와 구름을 바라봤다. 먹구름에 둘러싸인 흰 구름 속에서 가을이 모습이 떠올랐다. 앞다리를 모으고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 안았을 때 내 품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모습, 장난감 낚싯대 미끼를 잡으려 뛰어오르는 모습, 여러 모습의 가을이가 그 속에 있었다.
한참 동안 구름 속 가을이를 보고 앉아있다가 올레길을 걸으려던 생각을 접고 타고 왔던 버스를 되돌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화분집에 들러 흙을 샀다. 이번 주에 하려고 마음 먹었던 일, 가을이가 묻힌 곳에 새 흙을 덮어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달 남짓 사이에 가을이가 묻힌 곳 주변에 푸른 풀들이 새롭게 자라났는데, 돌을 쌓아둔 그곳은 흙이 타들어가듯 까맣고 습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걸렸었다.
가을이를 뭍은 자리 위에 쌓아 두었던 돌무더기를 모두 치우고 그곳에 고운 흙을 두텁게 덮었다. 그리고 가을이가 있었을 때 사 두었던 귀리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발로 꾹꾹 밟아주었다. 캣그라스가 고양이 헤어볼에 좋다고 사 키웠지만 정작 가을이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아 더이상 심지 않고 서랍 속에 남겨 두었던 귀리 씨앗들.
이제 겨울이 다가온다. 이번 주 들어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귀리든 잡초든 뭐든 푸른 식물들이 어서 자라나 가을이를 따뜻하게 덮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