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 민음사 | 원제 : L’Insoutenable Legerete de l’etre /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6부 대장정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독일 가수와 미국 여배우가 이런 경우에 속하며 주걱턱 신문기자 역시 이런 경우에 속한다.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아진 그의 주간지를 소련인이 정간하자, 그는 산소가 백배나 희박해진 공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수많은 미지의 시선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는 곳마다 경찰의 미행을 받고, 전화를 걸 때마다 도청당하고, 심지어는 거리에서 은밀하게 사진까지 찍힌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자기 익명의 시선이 도처에서 그를 따라다녔으며, 그러자 그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는 연극배우 같은 목소리로 벽에 숨겨진 소형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곤 했다. 그는 잃어버린 관객을 경찰에게서 되찾은 것이다.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칵테일 파티나 만찬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을 잃으면 그들 인생의 무대에 불이 꺼졌다고 상상하는 첫 번째 범주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하다. 반면 두 번째 범주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시선을 획득하는데, 마리클로드와 그녀의 딸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세 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조건은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조건만큼이나 위험천만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무대는 칠흑에 빠질 것이다. 테레자와 토마시를 이런 사람들 속에 분류해야만 한다.
끝으로 아주 드문 네 번째 범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몽상가이다. 예를 들면 프란츠가 그렇다. 그가 캄보디아 국경까지 간 것은 오로지 사비나 때문이다. 버스가 태국의 도로에서 덜컹거릴 때, 그는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다고 느낀다.
토마시의 아들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나는 그의 이름을 시몽이라 부르겠다.(그는 아버지처럼 성서 속 인물의 이름에 기뻐할 것이다.) 그가 희구하는 시선은 토마시의 시선이다. 서명 캠페인에 연루되는 바람에 그는 대학에서 내쫓겼다. 그가 교제하던 젊은 여자는 시골 신부의 조카딸이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집단 농장의 트랙터 운전사,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토마시도 시골에 사는 것을 알자 기뻐했다. 운명이 그들의 삶을 대칭적으로 만들었다고! 그것 때문에 그는 토마시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는 답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토마시가 그의 삶에 시선을 보내는 것. (p439)

7부 카레닌의 미소

이러한 혼란스러운 생각 중 도무지 떨쳐 버릴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생각이 테레자의 영혼 속에서 싹텄다. 카레닌과 자신을 잇는 사랑은 자기와 토마시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보다 낫다.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낫다는 것이다. 테레자는 자기 자신이나 토마시 그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이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적어도 여러 형태 중에서 최상의 경우라도)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 것은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남편이 부인을,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점도 있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테레자는 다시 한 번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며 깊은 회환을 느꼈다. 어머니가 모르는 마을 여자 중 하나였다면 아마도 그녀의 쾌활한 천박성이 테레자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아! 어머니가 남이었다면! 어머니가 자기 얼굴 윤곽을 그대로 지녔으며 그녀로부터 자아를 탈취해 간 것에 대해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사랑하라!’라는 천 년간의 명령이 그녀로 하여금 자기와 어머니의 닮은 점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폭력을 사랑이라고 명명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었다. 테레자가 어머니와 결별한 것은 어머니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머니와 인연을 끊지 못한 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떤 인간 존재도 다른 사람에게 전원시를 선물할 수 없다. 오로지 동물만이 할 수 있는데, 동물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 주위로 반복에 근거한 삶의 원을 그었고 두 사람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 주길 기대했다.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p481)

그녀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그를 비난했다.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지만,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단순한 자만심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토마시를 많이 사랑했다면 그와 함께 외국에 남아야 했다! 거기에서라면 토마시는 행복했을 테고 새로운 인생이 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떠났고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의 감정으로 그렇게 행동했다고 확신했더랬다. 그러나 이 사랑이 계략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그녀는 그가 귀국해서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요정이 농부를 소용돌이 속에 끌어들여 빠뜨려 죽이듯 그녀는 그를 불러들여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그가 위경련을 앓는 틈을 타 시골에 가서 정착하자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녀는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셈이다. 머리가 세고, 지치고, 외과의사의 메스를 다시는 쥘 수없을 정도로 손가락이 굳어버린 토마시.
그들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어디로 또 갈 수 있겠는가? 그들은 결코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프라하로도 결코 돌아갈 수 없으며 누구도 그곳에서는 일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마을로 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느님 맙소사,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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