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김영하 저 | 문학동네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통해 내게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작가의 올해 나온 신간이다.
그의 작품은 장편 “검은 꽃”,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그리고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반쯤 읽었던 정도. 박민규 작가와 같이 굳이 그의 모든 작품을 구해 읽고 싶다는 열망까지는 아니었지만 감각적인 소재와 세련된 글쓰기가 마음에 들었던터라 기회되면 언제든 읽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였는데 마침 회사 휴게실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주말 저녁  잠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김병수. 그의 서술로 이루어지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온전치 못한 그의 기억의 기록었음에도 독자에게 꽤나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과거에 그가 저질렀던 연쇄살인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의 잔혹한 느낌을 통해 어떤 스릴 마저 느끼게 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매체를 통해 이 소설이 반전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어서였는지 대략 어떤 반전일지에 대한 상상이 소설에의 집중을 좀 방해했던 것 같고, 그 힌트 때문이었는지 자꾸 영화 메멘토와 오버랩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쓸데없는 상념 없이 소설 속의 김병수가 되어 글을 읽었다면 어쩌면 더 큰 충격을, (혹은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김영하 작가는 내게 정말 고마운 작가다.
이처럼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시기마다 다시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을 마구 심어주니…

반야심경이 손에 잡힌다. 펼쳐 읽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p11)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오디세우스는 귀환을 시작하자마자 연을 먹는 사람들의 섬에 기착한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권한 연 열매를 먹고 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두 잊어버린다. 무엇을? 귀환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다. 고향은 과거에 속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미래에 속한다. 그후로도 오디세오스는 거듭하여 망각과 싸운다. 세이렌의 노래로부터도 달아나고 그를 영원히 한곳에 붙들어두려는 칼립소로부터도 탈출한다. 세이렌과 칼립소가 원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못박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접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증 치매 환자와 짐승이 뭐가 다를까. 다른 것이 없다. 먹고 싸고 웃고 울고, 그러다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그렇다면 박주태를 죽이겠다는 나의 계획도 일종의 귀환이 되는 셈이다. 내가 떠나왔던 그 세계, 연쇄살인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그리하여 과거의 나를 복원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는 이런 식으로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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