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 민음사 | 원서 : 色彩を持たない 多崎つくると,彼の巡禮の年

아마도 마케팅의 힘이겠거니 생각이 든다. 출간 1주일만에 100만부란 통계는…
3년전 1Q84까지만 해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이제 하루키는 내게 있어 한때 열광했던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루키가 변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변했겠지. 그의 글이 마음 깊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느낌을 다시 갖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내 감각의 변화는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와 오우미이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와 구로노였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이름에 색깔이 있건 없건 그 사람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건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했고,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꽤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다른 넷은 당영한 것처럼 곧 바로 서로를 색깔로 부르게 되었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라고. 그는 그냥 그대로 ‘쓰쿠루’라 불렸다.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도 없이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곤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하고 (p13)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 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 (p61)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예요,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죠.” (p78)
Le Mal du Pays: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 – 라자르 베르만(Lazar Berman)의 피아노 연주

그런 다음 미도리카와는 [라운드 미드나이트(Round Midnight)]를 머뭇거리듯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유속을 느끼고 발 디딜 자리를 찾는 사람처럼 화음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더듬듯 연주했다. 테마가 끝나고 긴 애드리브가 이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손가락은 물에 익숙한 물고기처럼 점점 민첩하고 활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손이 오른손을 고무하고 오른손이 왼손을 자극했다. 하이다는 재즈에 별다른 지식이 없었지만 셀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가 만든 그 곡은 우연히 알았고, 미도리카와의 연주가 멋들어지게 곡의 핵심을 꿰뚫고 있음을 느꼈다. (p97)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 (p129)

“(..) 물론 [비바 라스베이거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른바 전설의 명곡에 들지도 않아. 더 잘 알려진 엘비스의 히트곡은 얼마든지 있지. 그렇지만 이 곡에는 어떤 의외성이라고나 할까, 사람 마음을 이상하게 열어주는 힘이 있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푸근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고 할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p205)

수영을 하면 몸에 쌓인 피로가 풀리고 긴장한 근육도 풀어진다. 물속에 들어가면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1주일에 이틀, 30분 정도의 수영으로 그는 몸과 정신의 균형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물속은 사색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일종의 선 수행 같은 것이다. 일단 운동 리듬을 타면 사고를 아무런 속박없이 자유롭게 떠가게 할 수 있다. 개를 들판에 풀어놓은 것처럼. “헤엄치는 건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좋은 거야.” 그는 사라에게 그것을 설명한 적이 있다. (p273)

그것은 그가 일본에서 늘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립감이었다. 이거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하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고립의 이중 부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방인인 그가 여기서 고립된다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일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은 정말 올바른 장소에 있는 것이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려 웨이터를 불러서 레드 와인을 한 잔 시켰다. (p307)

“있지, 쓰쿠루, 한 가지만 잘 기억해 둬. 넌 색채가 없는 게 아냐. 그런 건 이름에 지나지 않아. 물론 우리가 그걸로 너를 자주 놀렸지만, 그건 다 아무 의미도 없는 농담이야. (..) 너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두려움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선 안 돼.” (p387)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은 빈틈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구성원 모두가 거기에서 깊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묘한 균열도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윽고 미묘한이란 말로는 처리할 수 없는 뭔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시로의 정신은 아마도 그런 다가올 미래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룹과 정신적인 연동을 풀어 놓지 않으면 그 붕괴의 현장에 휩쓸려 자신도 치명상을 입게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다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표류자처럼.
그런 마음을 쓰쿠루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성적인 억제가 불러온 긴장감이 적지 않은 의미를 띠기 시작했음에 분명하다. 쓰쿠루는 그렇게 상상했다. 후일 그에게 생생한 성적인 꿈을 꾸게한 것도 아마 그런 긴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무언가였으리라. 그것은 또한 다른 네 명에게도 무엇인가를(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른다.
시로는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긴밀한 인간관계를 더는 버텨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로는 다섯 명 가운데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감수성이 풍성했다. 그리고 아마 누구보다도 빨리 삐걱대는 마찰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로는 쓰쿠루를 배신자로 만들어 버렸다. 쓰쿠루는 그 시점에서 서클 바깥으로 벗어난 최초의 멤버로서 그 공동체의 가장 약한 연결 고리였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벌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녀를 범하여 임신을 시켰는지, 그것은 아마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그 충격이 가져다준 히스테리 속에서 그녀는 전차의 비상 브레이크 끈을 잡아당기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 약한 연결 고리를 찢어 버린 것이다. (p428)

그래도 그는 시로(유즈)를 용서할 수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오로지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하고 견고한 껍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급박한 위기를 눈앞에 두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 고작이라 수단을 가릴 여유는 없었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결국 도망칠 수 없었다. 폭력을 감춘 어두운 그림자가 집요하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에리가 ‘악령’이라 불렀던 것. 그리고 소리도 없이 차갑게 비 내리던 5월의 어느 날 밤, 그것이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그녀의 가늘고 아름다운 목을 끈으로 졸라 죽였다. 아마도 미리 정해진 장소에서 미리 정해진 시각에. (p430)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그것이 쓰쿠루가 핀란드의 호숫가에서 에리와 헤어질 때 했어야 할, 그러나 그때 말하지 못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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