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첫 장편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고.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시골 장터에서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이리도 가볍게 읽힌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p310)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그녀는 그 단조로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작업 안에 어떤 종교적 희원이 담겨 있었다면 그 바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곡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p406)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p409)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별돌을 굽고 있었다.(p411)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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