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20180501~0504)

지난 5월 초. 우리 가족은 3박 4일 동안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다.
뜬금없이 아내가 처제와 함께 딸을 데리고 셋이 오사카에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것이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가족 여행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딸 아이에게도 휴식이 필요할 것이라 이해하기로 하고, 혼자 지낼 3박 4일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교토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발 며칠 전 처제가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졸지에 처제를 제외한 우리 세 식구만의 가족 여행이 되어 버렸다.
애초 쇼핑과 먹방 여행으로 컨셉으로 잡았던 아내와 딸은 오사카 쇼핑 명소와 맛집을 낱낱이 꿰고 있어 가이드로서 제격인 처제가 빠지고 교토의 단아한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내가 합류하게 된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3박 4일 중 하루나 이틀 혼자 교토를 따로 돌아보고 아내와 딸 둘이 실컷 돌아다니게 해 주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 중 누구도 이번 여행에서 교토 땅을 밟지 못했다. 잠시 함께 고베에 다녀왔을 뿐 4일 내내 오사카 시내에서 쇼핑과 먹기를 무한 반복하는, 아내와 딸에게는 값진, 그러나 나에게는 고된 여행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째 날 과감하게 혼자서 교토로 향했어야 했다.
우리는 통신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각자 로밍을 하는 대신 휴대용 와이파이를 임대했다. 우리 세 명 각각의 휴대폰은 4일 동안 내가 들고 다녔던 휴대용 와이파이 기기를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서 여행한다는 것은 휴대용 와이파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쪽에서는 인터넷 사용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했다. 구글맵 없이 혼자 교토를 돌아다니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리 오사카 시내라지만 아내와 딸 아이를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아내는 다리 깁스를 하고 병원에 누워 원격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처제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어디가 더 맛있는지, 어디가 더 싼 지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움직이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일 로밍 신청을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기요미즈데라가 아직도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라는 정보를 접한 후 교토에 가려는 내 의지는 너무나 쉽게 꺾여버리고 말았다.

첫째 날 한큐백화점, 한신백화점, 구로몬 시장에서 쇼핑하고 먹고,
둘째 날 오사카 외곽에 있는 안도 타다오가 지었다는 시바 료타로 기념관에 잠시 들렀다가 아메리카무라와 도톤보리, 그리고 난바의 무인양품에서 쇼핑하고 먹고,
셋째 날 고베 기타노이진칸에 들렀다가 롯코산 케이블카(이건 케이블카가 아니다!)를 타고 야경을 본 후 돌아와 다시 도톤보리에서 저녁 먹고,
넷째 날 마지막으로 또다시 도톤보리의 의류 매장에서 쇼핑하고 먹고 공항으로 이동해서 비행기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다.

4일 동안 고베규와 스시와 라멘과 야키니쿠와 야키소바와 타코야키를 먹었고, 곳곳에 위치한 돈키호테류의 드럭스토어에서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자질구레한 화장품과 생필품과 먹거리를 사다날랐다. 돈 쓰는데 그다지 과감하지 못한 아내는 한큐백화점 명품코너를 몇 바퀴 돌다 결국 특별히 맘에 드는 게 없다고 빈손으로 돌아섰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처제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잘 마시지도 않는 차를 위한 다기류와 주방용품들을 구매했다. 한국에서 사려면 두 배 이상의 가격이라면서.
쇼핑한 물건들을 들고 들어오기 위해 현지에서 대형 캐리어를 하나 사서 나눠 넣고 수화물을 추가 신청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올 때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포함 총 4개였던 짐 가방이 갈 때는 7개로 늘어나 있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4일 동안 매일 10km 이상 씩을 걷느라 몸도 지치고, 매일 족히 네 끼 분량의 음식을 먹어치우느라 위 또한 지칠 법한데, 며칠 간 일본 음식만 먹었더니 한국 삼겹살이 생각난다고 굳이 삼겹살을 먹고 들어가자고 한다. 나 또한 4일 내내 사케와 생맥주에 질려있던 터라 소주 생각이 간절해 그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이 두 여성의 식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웠던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딸 아이는 인스타에 올린답시고 오사카에서 사 온 각종 먹거리와 화장품, 의류 등을 탁자 위에 가지런히 진열해두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 세 식구가 4일 동안 얼마만큼의 돈을 오사카에서 소비했는지는 굳이 계산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나로서는 좀 힘든 4일이었지만 티 내지 않고 즐거운 척 하려 한다. 여자들은 가끔 무엇인가를 맘껏 소비하고 싶은 욕망, 구매는 못하더라도 맘껏 둘러보고 싶은 욕망을 본능으로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맘껏 소비하지는 못했지만, 평소보다 좀 더 자유롭게 소비하고 둘러볼 수 있었던 지난 4일이 아내와 딸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경험이 또다시 오래도록 일상을 잘 버텨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주 한 병에 알딸딸한 기분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도 거실에서 아내와 딸 아이는 오사카에서 사 온 색조 화장품의 색상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느라 떠들썩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의 머릿 속은 다시 회사 일로 돌아가고 있었다. 4일을 비운 사이 뭔가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 날 꿈속에서 난 교토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인 시비 앞에 서서 헌화를 하고 낮은 소리로 서시를 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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