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2000년 ‘향수’ 이후 14년 만의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150페이지가 안되는 짧막한 소설이다.
한 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다. 좀 더 느리게 생각하는 연습을 한 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 보잘것 없는 것의 가치를 그 사람은 전혀 몰랐고 지금도 몰라. 자, 이게 다르델로의 어리석음이 어떤 장르냐고 한 네 물음에 대한 내 답이야.” (p25)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다.” (p58)

그러니 그런 두 가지 증오의 열매가 사과쟁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온화하고 섬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했던 아버지처럼 언제까지고 침입자일 것이었다. 그러니 준엄한 논리에 따라 침입자이면서 동시에 온화한 사람은 평생 사과를 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p75)

“샤를하고 너는, 사교계 칵테일파티에서 불쌍하게 속물들 시중이나 드는 동안 좀 재미있게 해 보려고 웃기는 파키스탄 말을 만들어 냈어.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 돼. 너는 피곤하고 지겹기만 할 뿐이야.”(p97)

“(…)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 거야, ‘무한히 좋은 기분’, unendliche Wohlgemutheit 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p99)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며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 (p136)

“(…)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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