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른 곳에 –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 저/방미경 역 | 민음사 | 2011년 11월

누가 시인과 그 어머니의 삶을 단지 우스꽝스럽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는 차라리 산보하듯이 책들을 구경했고,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어떤 페이지에서 한참 멈추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시 한 구절에 멈추어 그 시의 나머지 부분이 아무 감흥 없어도 상관하지 않고 한참씩 머물러 있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단 한 줄의 시구나 산문의 한 대목이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는데, 그건 단지 그 글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글들이 어떤 입장권, 즉 다른 이들 눈에 안 띄는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선택된 자들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 같은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p74)

편지를 마칠 때쯤 돼서는 자기가 신경쇠약에 걸렸던 것이 배 때문이거나 화가의 생각들을 쫓아가느라 감내해야 했던 그 힘겨운 노역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위대한 모성애가 그 위대한 불륜의 사랑에 맞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자기 스스로 확신하게 되어 버렸다. (p84)

그런데 내가 이토록 작디 작음을 문득 깨닫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도망을 치는가? 위를 향한 도피만이 밑으로 낮아지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책상에 앉아 그 작은 책(화가가 다른 누구에게도 빌려 주지 않는다고 했던 그 소중한 책)을 펼치고 제일 좋아하는 시들에 집중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p90)

사랑했던 아내가 죽은 후로 그는 여자의 눈물을 아주 싫어했다. 여자들이 자기네 삶의 드라마에 그를 배우로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하는 것처럼, 여자의 눈물은 그를 두렵게 했다. 그런 눈물에서 그는, 운명이 없는 자신의 평화로운 삶에서 자기를 끌어내려고 온몸을 조이는 촉수를 보았다. 그는 눈물이 혐오스러웠다. (p458)

“개인적으로 그 화가가 막노동을 하고 인공 조명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유감스럽게생각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가 촛불을 밝히고 그림을 그리든지 전혀 그리지 않든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 상관없어요. 그 사람 작품 세계 전체가 오래전에 죽었거든요. 실제 삶은 다른 곳에 있어요! 완전히 다른 곳에!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그 화가 집에 가지 않게 된 거예요.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가지고 그분하고 토론하는 거 관심 없거든요. 그분이 아주 아주 잘 지내시길 빌어요. 난 죽은 사람들에겐 전혀 반감 없거든요. 그들 위의 흙이 가볍기를 빌어요.”(p492)

앙드레 브르통 역시 자기가 닮고 싶어 했던 어떤 고귀한 것의 모방이 아니었는가? 패러디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아닌가?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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