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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젤리 발바닥

가을이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던 분홍색 젤리 발바닥에 어느새 굳은살이 생겼다.
외출 한 번 하지 않는 집고양이 주제에 발바닥에 굳은살이라…
좀 의외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이 녀석도 삼 년 가까운 생을 살아오면서 나름의 삶의 흔적을 발바닥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다다 집안을 뛰어다니고 책장에 뛰어올랐다 뛰어내리고, 카펫에 스크래치를 해대는 일상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여간 발바닥의 굳은살.
아기 때의 말랑말랑 젤리 발바닥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리 생각해보니 지금의 좀 딱딱하게 굳은 젤리 발바닥도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녀석의 삶이 담긴 굳은살 박인 젤리 발바닥.

여전히 발바닥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녀석. 잠시 졸고 있는 사이를 틈타 발바닥을 간지럽혀 본다.
표면이 조금 굳었다 해도 달콤한 젤리의 맛은 아직 남아 있다. 딸 아이가 한때 좋아했던 젤리빈처럼…

아직 더 먹어야 할 설사약이 하루 치 남아있다.
약을 먹일 때마다 녀석과 치러야 하는 전쟁이 벅차지만 그나마 지금은 가끔씩 뛰어다닐 정도로 기운을 차려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약 얌전히 먹어주고 빨리 예전처럼 씩씩한 가을이가 되어주길 바란다, 가을아.

고양이처럼 살기

업되지 않은 채로, 조심스럽게, 차분하게, 조금은 우울하게. 이렇게 삶은 사는 거다. 소리 없이 가만가만 걷다가 내키는 곳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금방이라도 감길 듯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흰 고양이처럼.

흥밋거리를 발견한다면 기꺼이 에너지를 모아 힘차고 재빠르게 달려드는 본래의 모습을 잊지는 않기를..

서초역 사거리 밀리는 차선의 끄트러미에서

나쁜 놈들이야. 라고 내뱉고 말지만 결국엔 나만 바보였던 것이다.
서초역 사거리 출근길에 길게 늘어선 직진 차선의 끄트머리에서, 저만치 앞서 새치기로 끼어드는 수많은 차들로 하염없이 길어지는 대기 시간을 짜증 내며 혼자서 매일 되뇌는 말이다. 나쁜 놈들이야…
하지만, 짧게 끊기는 신호에 앞서 사거리를 통과하여 나보다 2~3분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수많은 나쁜 놈들을 바라보며 막히는 차선의 끝에 남아 내가 느끼는 감정은… 패배감이다.
어쩌면 나는 인생에서도 마구 끼어드는 새치기 차들 때문에 도대체 앞으로 나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길게 늘어선 차선에 남아 나쁜 놈들이야, 나쁜 놈들이야… 하릴없이 되뇌고만 있는 그런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패배감에서 벗어나기를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
나 자신이 나쁜 놈들의 하나가 되거나 아니면 유턴으로 방향을 되돌려 나만의 길을 가거나.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아!

지난여름 아내와 딸아이의 2주간의 유럽 여행 이후 몇 달 만에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번엔 1주간의 일본 여행이다. 혼자된 지 첫날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먹는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 배가 고프면 뭔가를 해 먹고, 너무 지저분하다 싶으면 청소와 설거지도 하고, 그동안 못 본 ‘인간극장’ 따위의 다큐멘터리도 찾아본다. 이런 일상적인 면에서 혼자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심해지면 때로 견디기 힘든 공포를 느끼기도 했었다. 일 년 전엔 말이다.

하지만, 지난여름과 이번 겨울, 난 외로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가을이 덕분이다.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지금도 내 2M 우측 마루바닥에 똑바른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잠을 잔다.

이 녀석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겨지는 것은 확실히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사람을 막 따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곁에 있어도 쉽게 스킨쉽을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 곁 1~2M 정도의 거리 유지하기를 좋아한다. 마치 용의자를 미행하는 잠복 형사처럼, 지구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어쩌면 이제 막 밀고 당기기를 시작한 약삭빠른 연인처럼…

지금 가을이가 눈을 떴다. 역시나 시선 안에 유지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안심한 표정이다. 녀석… 고맙다. 네가 있어서 외롭지 않고 무섭지 않다.

사랑한다. 가을아.
내 깊은 잠을 자려면 너를 네 방에 넣어야겠지만, 이리 고마운 너를 내 어찌 네 방에 홀로 가두리….
내일 출근하면 12시간 이상을 혼자 버텨야 할 텐데…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홀로 버려지다.

96년에서 99년 사이 어느 해 가을. 1박의 회사 워크샵을 마치고 몇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복귀하던 토요일 아침의 번잡함 속에서 동승할 차량을 찾지 못하고 홀로 버려졌던 회사 동기의 표정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우린 젊었고, 우리 자신의 차를 갖지 못했기에, 목적지가 비슷한 선배들의 차를 얻어타고 복귀해야 했다.

차라리 차가 더 모자라 대여섯 명이 함께 버려졌다면 좋았을 텐데, 잔인하게도 딱 한 사람만이 버려졌던 것이다. 더 잔인하게도 우리는 자신이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차량을 소유한 선배들의 차에 먼저 탑승하려고 서로 말 없는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내가 홀로 버려질 수도 있는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나는 그 동기의 바로 앞에서, 그 동기를 제치고 마지막 자리를 얻어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마지막 차량의 마지막 자리에 올라타 차가 출발할 때, 홀로 남아 난감해하던 그 동기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미안했다. 나의 비겁함이 부끄러웠다. 자리가 비좁아 함께 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함께 버려져 줄 수는 있었을텐데…

이제 다시 그런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난 내가 홀로 버려질 수 있을 것인가? 함께 버려져 줄 수 있을 것인가?

R.I.P. 주찬권(1955년 3월 18일 – 2013년 10월 20일)

주찬권
1955년 3월 18일 – 2013년 10월 20일
향년 58세로 영원히 잠들다.
들국화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시들지 말아야 한다. 듬성듬성한 꽃잎을 간직한 채 오래오래 시들지 말아야 한다.

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tain/201310/wk2013102413284313399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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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Lou Reed(March 2, 1942 – October 27, 2013)

Lou Reed
March 2, 1942 – October 27, 2013
향년 71세의 나이로 영원한 잠에 들다.

이제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 느껴야할 또하나의 감정을 내게 남겨두고 영원히 가셨군요.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행복했기를 빕니다.

http://www.loureed.com/inmemoriam/

Just a couple of weeks ago Lou did a photo session intended to become a print ad for his friend Henri Seydoux's French audio headphones company Parrot. The renowned photographer Jean Baptiste Mondino took the shots, and this was the very last shot he took. Always a tower of strength. - Tom Sarig

Just a couple of weeks ago Lou did a photo session intended to become a print ad for his friend Henri Seydoux’s French audio headphones company Parrot. The renowned photographer Jean Baptiste Mondino took the shots, and this was the very last shot he took. Always a tower of strength. – Tom Sarig

아가 고양이

주제에 맞지 않게 아가 고양이를 들였다.
중간고사에서 올백을 인정받아 선물로 들여온 아가 고양이를 보고 딸아이는 너무 좋아한다.
우리가 이 아가와 끝까지 행복한 시간들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직 이름 없는 아가의 지금까지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2013. 9/15 인천 태생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1450, 2남 4녀의 아가 중 남아, 몇째인지는 알 수 없음.)
10/20 태어난 지 35일 만에 우리 집으로 입양
10/21 우리 집에 온 후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걱정을 안겨주던 아가에게 분유를 타주자 이를 처음으로 먹음
10/22 우리 집에 온 후 처음으로 응가함.
10/28 아침에 젖병 고무 꼭지를 씹어 삼켰는데 심히 걱정되는 상황. 응가로 나와야 할 텐데..

처음 우리집 에 왔을 때와는 달리 몰라보게 씩씩하고 과감해졌는데 혼자서도 우다다거리면서 잘 놀고 잘 잔다.
분유는 잘 먹는데 아직 물에 불린 사료를 겨우 조금씩 먹는 정도이고 분유를 떼고 사료로 넘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손발톱은 한번 힘들게 깎아줘서 예리함은 조금 무뎌졌는데 이제는 이빨이 문제다. 살살 물어도 꽤 아프다.

아가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줘.

몽마르뜨 공원엔 통통이 토끼가 산다.

5월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서리풀 근린공원 산책로를 걸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몽마르뜨 공원에는 프랑스어를 쓰는 외국인 가족뿐 아니라 야생이라고 절대 믿을 수 없는 돼지같이 통통한 토끼 한 마리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아마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느껴졌던 붉은색과 흰색의 철쭉도….
산책로 벤치에 앉아 산미구엘 한 병을 비웠다.
간만의 여유로운 산책이었다.

우울함에 대하여

우울함을 극복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과 이수치열(以數治熱)
우울한 상태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 빨리 우울 상태를 벗어나는 방법과 일부러 활기찬 활동을 함으로써 우울을 잊어버리는 방법이다.
경험상 두 방법 모두 나름의 장점과 효과를 가지고 있다.

먼저 이열치열
우울한 날 오늘처럼 비가 온다면 더욱 금상첨화
Uriah Heep의 Rain이나 Bad Finger의 Walking in the Rain과 같은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우울한 정취에 한껏 빠져 들어본다. 향기 그윽한 커피 또는 막걸리에 빈대떡과 함께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우울 속에 빠져 지내보자. 우울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끝내 그 심연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새로운 희망에의 의지를 싹트게 해 줄 것이다.

그다음 이수치열
이 방법은 초기에 약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우울한 심적 상태와는 반대로 몸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인데, 심신이 따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떤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잠들어 있다가 무언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이 생각나 몸을 갑자기 일으키는 것과 같은 상황을 약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까운 산에 오르거나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되 우울한 심적 상태를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육체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노가다의 진정한 맛을 느껴본 사람은 육체적으로 힘든 극한의 상태에서 느끼는 쾌감을 알 것이다. 이런 경험은 심적인 우울을 금세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극복했다는 일종의 자신감마저 체험할 수 있다.

우울은 결코 나쁘지 않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단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섞이고 여러 일들에 관여하면서 세상을 살고 있을 뿐이다.
가끔은 본질적인 외로움을 흠뻑 느껴보는 것이 좋다. 반드시 그 속에서 나 자신의 맨 모습을 느끼게 될 것이다.